거실에 꽃을 피우는 선인장과에 속한 화초가 하나 있습니다. 몇 해 전, 다른 화초들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, 그것만은 죽지 않고 있어서 대견해 했는데, 그 끝부분에 빨간 몽우리까지 맺더니 급기야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적이 있습니다. 그걸 보고 아내와 나는 크게 감탄하며 기뻤습니다. 그 안에서 기필코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와 생명의 신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. 이렇게 생명을 품고 있는 것은,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, 언젠가 꽃을 피우게 마련입니다.
“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”(요1:4).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했습니다.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품는 것은 생명을 품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. 생명은 꽃을 피우게 마련입니다. 그 꽃을 여기서는 빛이라 했습니다. 사람들의 빛이라 했습니다. 말씀은 생명이요 생명은 빛입니다. 말씀이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생명을 잉태한 것이고 그 생명은 그 안에서 빛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. 그리하여 주님을 영접한 사람의 마음에는 어둠이 자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. 절망, 두려움, 의심 등의 어두움이 사라진다는 말입니다.
한편 참 빛을 받아 승리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살아야 합니다.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. 그처럼 우리도 ‘세상의 선물’로 살아야 합니다. 비장한 결심을 해야 ‘세상의 선물’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. 우리가 줄 수 있는 선물은 평범한 것 중에서도 많기 때문입니다. 친절한 말, 따뜻한 손길, 환한 웃음과 미소,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한 마디의 기도도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들입니다.
오래 전 미국의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. 그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돈이 없어서, 거부인 바턴에게 찾아가서 2천불을 꾸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. 자기에게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대여해 주시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. 주위 사람들은 경력도 없는 그에게 담보나 후원자도 없이 돈을 꾸어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지만, 바턴은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2천불을 주었습니다. 과연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그 돈을 갚았습니다. 그리고 10년이 지나갈 무렵 미국에 경제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. 이때 바턴의 사업이 완전히 파산이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.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트로사는 바턴을 찾아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. “바턴씨 내가 당신이 빚진 7만 5천불을 갚아 줄테니 사업을 다시 일으키십시오.” “자네가 가져갔던 돈은 이미 갚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요?” “분명히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당신이 베풀어 준 은덕은 평생 갚지를 못합니다. 그때에 2천불로 장사를 해서 오늘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. 이것이 돈으로 갚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. 은덕과 사랑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.”
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조건 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. 그리하여 우리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새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. 그 은덕은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한 것입니다. 다만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시는 세상의 선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.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.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세상의 선물로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기도 하지만, 우리가 세상의 선물이 되기 위해 새롭게 거듭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. 우리의 삶이 한 순간에 변화되기는 어렵더라도 희망을 품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.